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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진실의 세계에 살지 않고, 현실의 세계에 산다. -박수행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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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침에 잠에서 깼다. 창 밖은 흐릿했다. 뒹굴거리며 시계를 봤다. 시계는 10시 경을 이었다. 무언가 아쉬워서 다시 눈을 감았다... 헌데 잘 자지지 않았다. 억지로 누워 있다가, 결국 10시 40분 경에 일어나고 말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하던데로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 보았다. 좀 어둡다 싶더니, 웬일로 비가 싸아하게 오고 있었다. 도서관 가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1-2 그래서 이것저것 일하는 척 좀 하다가, 컴퓨터를 켰다. 습관처럼 KMP를 실행시켰다. 시작에 재생시킨 곡은 'Acoustic Cafe'의 'Last Carnival'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재생된 곡은 'Within Temptation'의 'The Heart Of Everything'이었다. 그 다음 곡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Two Ton Shoe'의 곡이었던걸로 기억난다. 1-3 ...창 밖은 - 짙지 않은 먹구름이 허공에 흩뿌려져 흐릿흐릿했고, 적당히 선선한 비방울이 대지를 추적추적 적시고 있었다. 습도 높은 대기가 세상을 요염하게 휘어싸고 있었다. 더불어 창 안의 방에서 내 기분은 차분해졌고, 이내 조용히 가라 앉았다. 조금만 더 휩쓸리면 뭔가 음울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런 음악들을 달아서 들으니, 기분이 미묘했다. 1-4 언젠가,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었던가, 봤던 글이었던가. 슬플 때 그것을 억누르려 억지로 코믹 영화 따위를 보기보단, 오히려 슬픈 영화를 보고, 슬픈 음악을 들으라고 했었다. 눈물을 쏙 빼라고 했었다. 그래야 오히려 기분이 풀린다고, 그랬던 말을 들었던가 봤었다. 언급했던 음악들을 들으니, 이 말인가 글이 기억났다. 음울해 질뻔한 기분이 물렁해졌다. 그냥, 이마저도 별거 없구나.. 이마저도 지나가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냥, 평범한 주말의 하루가 되었다. 2. 얼마전,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재밌는 글이 한편 올라왔었다. '철선전(鐵仙傳)'이라고, 오랫만에 보는, 내가 좋아하는 동양 고전의 문장으로 이뤄진 글이었다. 비단 문장 뿐 아니라 글의 구조도 무척이나 짜임새 있었고, 글쓴이 특유의 감각 역시 살아있는 글이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동양 고전이 읽고 싶었다. '서유기'나 '봉신방'은 재독하자니 너무 길었다. 해서 철선전에 언급되었던 '열선전'과 '천예록'을 빌렸다. 열선전 같은 경우엔 인물인물의 막이 너무 짧아서 금새 흥이 떨어져서 반쯤 읽다가 그만 뒀고, 천예록은 좋았다. 또한 문장이라든지, 구조는 '포송령'의 '요재지이'의 그것과 무척이나 흡사했는데, 그런데도 또 분위기 자체는 많이 달랐다. 아니, 분위기라고 하기도 뭔가 약간 다른 기분이지만, 무튼 그랬다. 이게 한국풍과 중국풍의 미묘한 차이인가 싶기도 했다. 음, 아직 다 읽진 못했으니, 다 읽고 조금 더 잡설을 이어가볼까 싶다.(그런데 요재지이는 읽은지 3~4년은 다 지나가서 느낌만 남아있는지라, 천예록을 다 읽어도 못할꺼 같은 기분이..;) 3. 어제 오랜만에 마도 감상문(내 주관적 해석의 극치를 달리는 감상문)의 극치를 달리는 모래선혈 감상문을 완성하고 블로그에다 올렸다. 이리저리 무척이나 귀찮은 작업이었다. 쓸 때의 뭔가 써야겠다는 열의는 완독 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흐릿해졌다. 그래서 감상문 이곳저곳 읽어보면 적잖이 마음에 들지 않는 곳들이 있다. 전반적인 문장이 너무 늘어지는 감이 있고, 마무리가 급작스럽다는 점들이 특히나 눈에 띄는 그것들이다. 이래서 감상문은 기분 들었을 때 바로 써내려가야 하는가보다. 그런데 어쩌나, 자꾸 독촉이 들어온다. 뭔가 빨리 감상문을 뱉어내란다. 무릇 모래선형 쓸 때를 상기해보면 알 수 있듯, 감상이란 쓰고 싶을 때 써야 그나마 괜찮게 나오는 법인데. 아오, 능력 없어 잘 쓰지도 못하고, 게을러서 빨리 쓰지도 못하고, 할 일은 태산 같은데. 그냥 나긋나긋 풀어가야겠다. 4-1 연초쯤이었나, 우연히 알게된 블로그가 하나 있다. 그냥 짤막하니 에세이 형식의 일기를 남기는 아담한 블로그인데, 처음엔 그저 연륜이 쌓인, 안정된 문장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링크한 블로그였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주인장님이 부러운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4-2 주인장님은 번역을 직업삼고 있으신걸로 보인다. 번역가라는 직업이다 보니, 지리적 자유도가 무척이나 높으신 것에 맞춰, 남편분 직업상 여러 나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는지라 세계 여러 곳을 오 다니며 작업을 하시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세상 구경도 많이 하시는데다가, 무척이나 멋있게 삶을 즐기시는 듯하여 -여행, 음식, 문학, 공연 등 거의 대부분의 문화 생활을 포괄하며 즐기는 생활양식을 지니셨다-, 무척이나 부럽다는 생각이 포스팅을 볼때 마다 떠오른다. 나도, 언젠가 그럴 수 있을까. 음.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다만... 히히. 헌데, 이 곳을 내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태그도 잘 안 걸고, 당연히 밸리에도 글을 안 싣는 블로그인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알게 됐는지 내 스스로도 참 신기하다. 5-1 11월이 지나가고, 12월이 다가오고 있다. 12월, 연말, 수많은 만남과 모임으로 사람들 대부분이 바쁜 때가 아닐까 싶다. 연인과의 약속, 친구들과의 모임, 가족과의 파티 등의 그것들일 테다. 나 같이 내향적인 사람까지도 - 꼭 연말이라서는 아니지만, 압축된 기간 동안 적잖은 수의 사람들을 보지 않게 될까 싶다. 5-2 연말의 상황이 이렇듯 약속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에 따라 적잖은 영화, 공연 콘서트들도 상영되고 상연된다. 무진 재밌는 것들이 많아 보인다. 음, 그래서 아쉽다. 같이 공연보러 갈만한 친구(여자 사람)도 하나 제대로 없다는 점이 무척이나 슬프다. 정작 여자 친구가 없다는 점은 크게 아쉽지 않은데 말이지. 뭐, 그래도 이전까지 함께 공연을 즐겼던 아가씨께서는 어느덧 남자 친구 분이 생겼으니, 멋진 연말 - 나아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실테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까. 5-3 더불어 콘서트에 대해 조금 더 주절거려본다. '자우림'은 거의 매년 연말 콘서트를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딱 맞춰서 이번 년에는 연말 콘서트를 열지 않는 것일까. 조금, 아니 사실 무진장 서운하다. 올해도 여지까지처럼 콘서트를 열었다면 무슨 수를 쓰든, 무슨 방법을 쓰든 꼭 보러 갔을 텐데 말이지. 자우림 콘서트라면 혼자라도, 서울이라도, R석으로 환영해 줬을 텐데.
모래선혈
하지은 저 2009년 7월 1일 발간 2009.11.29 a.m) 03:03 에 완성 -잘 보아라, 레아킨. 0-1 로크미디어 산하 노블레스 클럽의 시발탄이 되었던 '얼음나무숲'의 하지은이 신작을 냈다(지금에 와서 신작이라 말하긴 약간 민망할 정도의 시일이 지났지만). 흡사 내리쬐는 햇볕 아래, 메말라 갈라지고 찢어졌던 땅가죽만 같던 장르 문학계에 한줌 단비라 할 수 있었던, 돌풍을 일으켰던 그 얼음나무숲의 하지은이었던 만큼, 그녀의 후속작은 누구에게든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을테고, 나에게도 그 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몇몇 이유들로 인해 많이 늦었지만, 어제 그녀의 신작을 마무리 지었다. 0-2 글은 나쁘지 않았다. 굳이 평하자면 못해도 평작 정도는 충분히 되었다. 그럼에도 난 약간 심통이 나있었다. 작가에게 있어 전작의 벽이 너무 높았던걸까 싶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으레 보통 창작자가 한번 '대박'을 내면 그 컨텐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듯, 그녀의 이번 신작도 어쩐지 얼음나무숲의 향기가 너무도 짙게 느껴졌기에 그러했다. 조금 더 솔직한 마음으로 말한다면, 얼음나무숲과 구조적으로 상당히 유사하지만 그것에 비해 전반적으로 부족한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진보한 부분이 있다면 - 하지은 특유의 감수성 듬뿍 묻어나는 문장 정도라고 할까. 0-3 그런데, 그렇게 아쉬운 점이 적잖은 작품이었는데 왜 내가 왜 지금 이렇게 한동안 안쓰던 감상문까지 이렇게 없는 시간 쪼개어 끄적거리느냐 묻는다면, 이례적으로 작품이 아니라 작중 인물 때문에 이렇게 감상을 쓴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겠다. 내가 너무도 잘 아는, 그리고 그렇기에 가장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과 너무도 흡사한 부분들이 많아서. 0-4 이 모래선혈의 주인공인 '레아킨'의 사고 체계를 느낀 순간, 나는 그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 내 시각에서 작품의 주제나 완성도는 어쩌면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주제보다도 인물의 행보가 중요하게 느껴졌으니까. 레아킨의 언과 행에 내 모든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작품을 떠나 나는 나름대로 만족했다. 글을 떠나 적어도 그의 언과 행은 작품 내에서 마지막까지 일관된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에. 0-5 그렇기에 이번 감상문은 이례적으로, 내 감상문 사상 처음이자, 그리고 또한 아마도 마지막이 될 - 작품에 대한 감상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감상문이 될 듯하다. 1. 주인공 레아킨은 후천적인 감성 억압자이다. 기본적으로 '색'을 볼 수 없다는 것이 표상하는 상징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되는데, 인간의 사고와 판단은 기본적으로 감성(혹은 오성)을 전제로 하고, 그 감성은 현상의 인지에서부터 시발되기에, 한 감각이 - 그것도 인간의 감각 중 약 70%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시각의 일정 부분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억압되는 감성을 명확히 드러내주는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글의 중, 후반부에 작중 인물들의 대화, '타락'이 '비오티'와의 거래에서 미각을 댓가로 받았을 때에 내뱉는 대사에서 작가의 입을 빌어 이야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나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는 뭐든 인간다운 것을 갈망하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니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다음에는 시력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억일 수도 있고.> 모래선혈 329p 中 따라서 레아킨에게 있어서도 타락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감성이란 무의미에 가깝다(사실, 타락의 경우는 그 자체가 하나의 현상과 감성의 교집합적 표상이기 때문에 약간은 교차되는 부분이 다를지도 모르나, 본질적으로 따져본다면). 그는 분노하지도,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가 바라보는 현상은 인간의 시선이 아닌, 곧 방금 인용한 타락의 대사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기계적인 그것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이기 보단 '기계',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인간 아닌 것'에 더 가까운 존재라 볼 수 있다. 적어도 전제들이 온전히 참이라는 가정 하에서. 2-1 헌데, 과연 인간이 오로지 현상을 현상으로서만(에포케 - 현상학적 판단중지) 바라본다는건, 실제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럴리가. '감정이 없는' 레아킨은 죽거나 다치는 것을 '기피'한다. 동족 병사들을 베는 것을 '꺼려' 한다. 감정이 없다라고 전제 했지만, 가장 근원적인 호불호에 대한 감각은 작용하고 있음이 여기서 파악되고, 또 이것 역시 하나의 판단에 천착하는 행위임을 살펴볼 수 있기에 그의 무감성은 무감성이라기보단 무감성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2-2 여기서 살펴볼 수 있듯, 인간은, 인간인 이상 본질적인 의미에서 온전한 에포케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명확히 한계가 규정 지어져 있는, 억압된 감성은 비유하자면 - 뿌리는 그대로 남겨둔 채, 삭만을 자른 나무와 유사하다. 결국 무의식상에 잔류하는 감성은 표피층에서 억압받기에 되레 응축되기까지 한다. 따라서, 감성의 거세는 불가능 하기에 곧 감성의 억압에 다름 아니며, 감성의 억압은 곧 감성의 폭발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도출하게 될 수 밖에 없다. 2-3 한줄로 요약해보자면 -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그 사고 의식 가장 심층적인 기저에 깔린 방향, 벡터성의 원류가 바로 감성에 기인하기에 그것에 대한 온전한 억압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3-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튀어나오려는 것을 짓누르다 보니, 이것이 언젠가는 터져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부풀대로 부풀어버린 풍선에 비유하면 적절하려나. 살짝의 외압 - 바늘 따위의 도구로 살짝만 콕 하며 건들어주면 펑! 하고 터져버리는, 이런 상황까지 도달했다 비할 수 있는데, 비오티의 소설 <호반 위 황금새>가 레아킨에 있어 바늘의 역할을 하며, 레아킨은 자신에게 결핍되었다 믿었던 감성이라는 것을 흐릿하지만 확실하게 느끼게 된다. 곧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3-2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여기서부터 - 자신이 살아있음(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부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당연하게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은 그것을 실제로 겪어보는 순간 직전까지 어떠한 느낌일지 알 수 없고, 설혹 그것을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순간적이고 단편적인 경험에 불과하다면 역시나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 명확히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단편적인 감각들의 수많은 누적되는 과정을 거쳐서야 그것은 하나의 명료히 인지되는 감각으로 자리잡는다. 그러고서도 종종은 이것이 그것이 맞나 싶기도하다. 이는 곧 '말'이 지니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닿기도 하지만, 이부분은 일단 제쳐두고 계속 이야기를 해보자면 - 하물며 생전 한번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감각인 바에야 그것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 하는 질문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감각에 수없이 회의한다. - 과연 느끼고 있는 것이 실질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인지, 혹은 '느끼고 싶기에' 느낀다 라고 '생각'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 한다.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그저 느낀다 라고 생각하면 그만일테지만, 닿을 수 없기에 더욱 더 갈구하던 것이기에 자꾸 자신의 바람이 감각을 왜곡하지 않았나 의구심이 자꾸 머리 뒤를 간지럽힌다. 4. 이 딜레마 상태에서 레아킨이 선택한 결론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선택과 같았다. 그들의 결론은 - 일단 믿고 보는 것. 자신의 감각이 왜곡에 의한 현상이든 아니든, 자신의 믿음 또한 믿기로, 인정하기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성과, 논리와, 현상을 넘어선 -일종의 종교적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 무목적성으로 존재하는 감성을 인정한다. 기계적이고 무감성적인 자신의 한계를 지양하고, 미지의 영역으로 한발 내딛게 된다. 5. 혹자는 비일반에서 겨우 일반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것이 무어 그리 대수냐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있어 이 한발의 의미는 결코 작지않다. 아니, 가히 엄청나다. 그들이 스스로 일반적인 감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스스로 감성의 틀을 제한된 범주에서 제단하고,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지향했던 것에는 그에 상응하는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충격에 짓눌려 억압받는 형상을 띄는, 거기다가 세월의 고착까지 거친 감성을 다시 이전의 형상으로 돌리려는 노력의 내면을 살펴보면, 그것은 애처롭다 못해 눈물겹기까지 하다. 재활 운동을 하는 환자의 경우와 전혀 다르지 않다. 되레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더 치열한 투쟁이다. 6. 그래서 난 레아킨의 마지막이 더욱 궁금해졌다. 비일반에서 일반으로의 회귀를 꿈꾼 그의 최후는 어떨까 하고. 또 내가 말한 그 아이의 결말은 그닥 유쾌하지만은 않아서. 그래, 소설이여, 너는 나에게 어떠한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가 하고. 음, 결론을 말해보자면 - 그는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이 현상을 배신하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작품의 비장미를 살리고 또 타락의 인과적인 죽음을 위한 장치였다는 점을 제하면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 초점은 '그가 죽었다.'가 아니라 '그가 느꼈다.'에 맞춰지게 되었기에. 그렇기에, 이 작품의 마지막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7. 작품에 대해 내가 집어보고 싶었던 부분에 대해선 적당히 이렇게 살펴보고, 투정을 조금 해볼까 한다. 이 글은 얼음나무숲의 구조를 답습하고있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해, 뭔가 붕 떠있는 조연 및 엑스트라들, 개연성이 상실된 인물성 등 상당히 눈에 차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안들었던 점은,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려 했다는 점이다 - 어쩌면 여기서 위의 모든 문제들이 연장되었다고도 생각된다 -. 지나치게 많은 상징화를 시도하다보니, 글이 묘하게 난삽해졌다. 그것이 성공했다면 '탁월한' 작품으로서 승화됐겠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그것은 하나의 조잡함으로 남았을 뿐이다. 어쩌면 구조적으로 얼음나무숲의 그것을 답습했기에, 더욱 그것을 뛰어넘는 연출과 상징 등의 빼어남을 보여주고싶었는지도 모르겠는데, 결과적으론 적어도 내 생각엔 확실히 실패적이었다. 8. 사실, 7의 불평을 풀어서 쓰자면 본문 전체의 내용보다도 더 길어지는 비평문이 하나 탄생하겠지만, 내가 감상을 쓰는 이유는 비평이나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니만큼, 대충 저정도로 해두고, 슬슬 이쯤에서 감상문을 마무리지어볼까 싶다. 아, 그리고 한가지 재밌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짚어두고 넘어가는게 좋을듯 한데, 이 소설에서 주요 직업군 중 하나로 소설가가 나오는데, 작가가 이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바가 무엇이었을까를 살펴보는 점도 한가지 재밌는 읽을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럼, 정말로 약간은 두서없지만 이번 감상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한다. 뱀발 - 감상이 쓰인 부분마다 일정 기간의 공백이 있기에, 부분별로 시간적 배열이 맞지 않을 수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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