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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진실의 세계에 살지 않고, 현실의 세계에 산다. -박수행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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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씨표류기 - MY NAME IS...
김씨표류기(Castaway On The Moon, 2009)

감독 : 이해준

출연 : 정재영(남자 김씨), 정려원(여자 김씨) 등

2009.05.30 a.m 03:23 에 완성


-MY NAME IS...



김씨표류기..?

 본인, 직접 적잖은 돈 8000원 지불하고, 영화관까지 직접 찾아가는 수고를 하며 영화를 보는 경우는 결코 많지 않다. 정말 이례적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거나, 이벤트가 생길 때 정도일까. 횟수로 꼽아본다면 연중 2~4번 정도나 될까 싶다. 때문에 이번 과제가 나에게 강요됐을 때, 특히나 그 장르도 코믹에 가까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와서, 그것도 비평문까지 남겨라는 과제가 강요됐을 때 내 심정은-이건 차라리 고문에 가까우리라 생각됐다.
 응? 그런데 웬걸, 억지로 이끌고 간 몸으로 영화를 관람하기 시작하고서-시작부터, 제법 괜찮은 영화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코믹스러움과 유머러스함은 하나의 도구로 사용됨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킬링 타임용 코믹 영화라 치부하기엔 도입부부터 그것이 말하고픈 바가 너무 많아 보였다. 그래, 그럼 그것은 무얼 말하고 싶었고, 난 무엇을 어떻게 들었는가.


가능성으로써의 - 독존

 영화는 두 주연에 앵글을 집중하며 이뤄진다.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가 그들인데,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를 통해, 하지만 공통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되어있다.
 남자 김씨는 흔히 일컬어지는 ‘잉여 인간’으로써 무직, 무능, 무력으로 통용되는 인물이다. 그는 수많은 현실적인 압박요소들을 피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삶에 대한 도피책을 사용한다. 그런 김씨는 사회적 성공이라는 목표에 달하는 것을 실패하고, 자살에마저 실패해 ‘삶’을 도피하지 못하고, 다만 ‘사회’에서 도피함으로 한강에 있는 ‘밤섬’이라는 섬 아닌 섬, 무인도 아닌 무인도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그리고 이 무인도에서 제 2의 인생, 타인을 온전히 배제한 독존을 시작하는데 이 독존을 영화에서 특유의 긴가민가한 과장법을 더해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재밌게, 성공적으로 이뤄낸다.
 한편 여자 김씨는 일명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이다. 아마도 이마의 흉터로 인한 트라우마가 원인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는데, 영화상에서 직접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니 만큼 가벼운 터치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고. 그녀는 아마도 수년째 방외(房外)활동을 하지 않았고(화장실 가는 것은 제하고) 오로지 컴퓨터를 통해 접촉하는 온라인 사회에서 자신의 허상을 만들어 타인들의 환호와 칭찬에 공허한 쾌감을 느끼며 살아갔지 싶다. 하지만 스스로도 잘 안다. 그것은 결국 날조된 쾌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타인과의 접촉-심지어 부모님마저도-을 온전히 거부하는 그녀는-그녀는 비틀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적인, 만족할만한 삶을 살고 있다.
 각기 결코 평범하진 않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홀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나름대로 만족하며 그 틀 안에서 살아간다. 살아가는 듯 보인다.


요구되는 필요로써의 - 공존

 그럼, 타인을 배제하고서 독존하는 그들은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그들의 행복은 조작된 행복임을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들은 외롭다. 때문에 대칭적인 소외자인 그들은 서로 소통함으로써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남자 김씨가 처음 여자 김씨의 ‘리플’을 발견했을 때, 여자 김씨가 두달여만에 처음 남자 김씨의 ‘댓글’을 보았을 때, 그들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공존’할 수 있었을 때, 비로써 그들은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버스에서 서로 대면함으로써-비록 초라했을지라도- 그들은 진정 미소지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일궈놓았던 독존의 가능성들이 일순간에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지기에, 공존은 행복의 필요조건일 뿐 아니라 ‘삶’의 필요조건임도 드러난다. 남자 김씨가 일궈놓은 유토피아인 밤섬의 한계는 그것들이 개인(독존)이 이룰 수 있는 것의 기반이 지닌 부실함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여자 김씨가 쌓아왔던 가상 세계에서의 날조된 이미지는 그것들이 지닌 허구성이 폭로됨으로써-그것들의 가치는 실상 무의미함에 귀결함을 드러냈다.
 따라서, 독존은 단지 가능성에 불구하고,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결국 공존이었다.


공존에 내재된 - 비극

 이야기가 너무 동화적으로만 해체된 듯하다. 해서 한번 집고 넘어가자. 어째서 그들은 공존할 수 없었고, 사회에서 도태되었던가. 누가 그들을 소외시켰는가. 수많은 책, 영화 등의 매체에서 다뤄지는 현대사회의 비극-물화-가 이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누가 그를 이름으로, ‘김성근’이라고 불러주었을까. 어깨위에 1억의 빚을 떠안은, 무직의, 애인에게 차인 백수, 사회의 낙오자가 아닌, 인간 김성근으로 마주했을까. 누가 그녀를 ‘김정연’으로 바라보았을까. 여자로써 이마에 흉터나 보기 싫은 얼굴을 지닌, 성격적 결함으로 인한 왕따가 아닌, 인간 김정연으로 대해줬을까.
 그들이 소외 당한건, 단지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그들에게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조금 더 구조적으로, 현실적으로 살펴본다면, 아마도 문제는 그들보다도 오늘날의 사회가 지닌 그 차가운, 비극적인 특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 그 존재함 보다 그 사람의 특성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인간을 일종의 물화시켜버리는 그 성질 때문에. 그런데, 그런데 이 영화는 공존을 이야기 하며 다시 그 비극으로 돌아가라 이야기한다. 다시 그들과 ‘공존’하라 한다. 그래서 그 잔인함에 다시 한번 편류하라 말한다. 이런 측면으로 바라본다면, 결국 이 영화가 전하고픈 결말은 비극으로 회귀하라. 인가.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마주본 미소는 아이러니의 반증이었던 것인가.


‘그들’아닌 ‘우리’로써 - 소통

 여기서 이야기를 비극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보다 중요하게도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이야기를 살펴보기 위해 문제를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확장해야한다. 그들의 호칭을 기억하자. 엔딩 크래딧을 기억하자. 영화 속에서 그들의 이름은 분명히 언급되나, 그들은 결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엔딩 크래딧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름은 없다. 그들은 단지 ‘남자 김씨’와 ‘여자 김씨’일 따름이다. 저들의 특별함은 영화를 위한 부분적인 과장일 뿐이다. 가장 흔한 ‘김씨’라는 성의 남자, 여자로서 그들은 어떤 특별한 층위를 대표하지 않고, 나, 혹은 당신의 문제, 곧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일깨워 준다.
 사실 그렇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부터 상류 계층에 편입하기 위해 입시 제도라는 지옥도의 일부를 담당하고, 대학에 들어오면서 등록금 걱정을 하고, 들어와서부터 취업 걱정해야 하는, 이름은 없고, 구조 속의 직함만이 남아있는 우리들도 실상 본질적으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기 보다 물건으로써 취급받는 한 개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공존을 이야기해야 한다. 소통을 이야기해야 한다. ‘나’가 ‘나’로써, ‘당신’이 ‘당신’으로써, 한 인격체로 대우받기 위해-우리는 소통해야한다. 소통을 바탕으로 인간으로써 공존해야한다.
 따라서 정정한다.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은, 결국 소통이며 공존이다.


정리하며

 첨언 정도로 밝혀두자면, 마지막 ‘소통’ 부분의 해석이 온전히 나 스스로 해낸 생각만은 아니다. 사실 이번 비평문을 미리미리 써두지 못한 이유도, 내가 처음 잡은 구도대로라면 ‘비극’ 부분에서 이야기가 끝나, 상당히 시니컬한 결론을 도출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씁쓸함을 자아 냈을 글인데, 아는 지인 분께서 ‘김씨표류기’에 대해 이야기하시길, ‘결국 희망은 소통이다.’라는 짧은 평을 해주셨기에-물론 희망은 소통이라는 이야기를 하기까지의 연역과정이 나와 동일한 논리를 바탕으로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 이번 비평문의 마무리를 나름 깔끔히 할 수 있었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비극’ 부분에서의 물화는 저번 ‘서편제’ 비평문에서 언급했던 ‘카프카’의 ‘변신’이나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인용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조금 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고, 또 이번엔 색다르게 경제학적으로 접근해 외부 불경제의 비용과 만족을 바탕으로 ‘최적’ 상황을 도입해 물화 개념에 접근해보면 어떨까 했는데,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적지 못했다. 약간 아쉽다.
 소재 부분으로 이야기를 접근해도 할 이야기가 적잖이 있었는데 이 부분도 지면상 적지 못해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예컨대, 크게는 자장면이나, 옥수수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이라든지, 조금 미시적으로 본다면 카메라, 달, 허수아비 등이 그것들이었다.
 이리저리 아쉬운 부분이 제법 있지만, 여하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내 나름대로 도출해낸 이번 영화의 주제를 정리하며 이번 비평문의 마침표를 찍도록 한다.


‘결국 우리의 희망은 소통이며, 공존이다.’




------------------

 수업 과제용으로 썼던 비평을 그대로 올린지라, '정리하며' 부분에 도와주신 '유리도끼'님의 닉네임도 바로 언급하지 못했다. 을흘. 그리고 '서편제'는 이전에 썼던 비평인데, 물론 내 블로그엔 올라와있지 않다. 제법 난삽한 느낌이 들어서. 그래도 본 감상을 즐기는데는 크게 부족함이 없을듯하니, 그나마 다행일까.

 정말 분량 제한 때문에 집어보고싶었던 인상적인 장면 등을 한 장면도 언급하지 못하고, 조금 더 개연을 더해줄 소재에 대한 해석을 하지 못한건, 제법 아쉬운데 이나마 이미 '완성'이란 매듭을 지은 감상문이니만큼, 이정도만 해두자.

 그럼 마무리로, 다시한번 유리도끼님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후기도 마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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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포룬 | 2009/06/03 17:25 | 영화&공연 감상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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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One man with.. at 2009/06/11 11:57

제목 : 김씨 표류기
표지와 제목에서 왠지 동화같고 B급 같은 느낌이들어 영화 별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강 뚝섬에서 표류한다는 스토리로 진행되는 예고편을 보고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바다에있는 섬도 아니고 한강에 있는 뚝섬이라는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빚진 무능력 셀러리맨의 자살시도로 벌어지는 표류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가 그곳에서 벌이는 행위는 거의 영화 의 주인공을 방불케했다. 원시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잘 버티고 짜장면이라는 희망적.....more

Commented by 유리도끼 at 2009/06/03 17:41
어머, 정말 제가 도움이 됐나요? 기뻐라~
감상비평 잘 봤어요! 기다렸던 글이라 얼른 읽어버렸네요.
저도 오늘 내일쯤 김씨표류기 감상을 올려볼까 생각했는데,
케이포룬 님이 너무 잘 쓰셔서.. 전 못 쓰겠네요 후훗.
(조금 창피해서요^^;; 헤헷)
Commented by 케이포룬 at 2009/06/04 20:28
무슨 그런 민망한 소리를..;
유리도끼님의 감상글이 기대 되는군요.

더불어 본문을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그걸로 감사할 따름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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